관리 메뉴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한국여성대회 공연극본 8.IMF,여자가 사는 법 (제14회 한국여성대회, 1998) 본문

역대 한국여성대회(제1-36회)/제11회~20회 한국여성대회

한국여성대회 공연극본 8.IMF,여자가 사는 법 (제14회 한국여성대회, 1998)

여성연합 2011. 2. 20. 01:53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공연 극본

8. ‘IMF, 여자가 사는 법’ (제14회 한국여성대회, 1998)



‘IMF, 여자가 사는 법’

- 충북여성민우회 주부연극반


등장인물

명희 (35세)주부

명희 남편 (40세) 직장인

영은엄마 (35세) 주부

주리엄마 (33세) 주부

강영자 (45세) 공장 노동자



암전

음악들어가면서 제목피켓 들고 입장 후 퇴장


1장 거실


(음악 점점 줄어듦)

명희 : (주방 쪽에서 소리만)  여보, 가람아빠. 식사 안하고 뭐해요.

남편 : (거실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며) OECD가입이다, 아시아 4룡이다 이거보게. 나 참! 어제까지만 해도 선진국인 양 떠들어대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하루에 부도나는 회사만 해도 천 개가 넘는다니.

명희 : (앞치마 두른 모습으로 나오며) 당신 회사는 괜찮아요?

남편 : (과민반응 보이며) 왜? 누가 뭐래?

명희 : 누가 뭐라긴요. 다들 난리니까...... 203호 덕호 아빠는 일거리가 없어 휴가 받아와서 계속 집에 있는데, 덕호 엄마가 하루종일 같이 집에 있으려니 신경쓰여서 죽겠대요.

남편 : 뭐라구? 남자들은 지금 살얼음판에서 기고 있는데, 같이 집에 있는 게 신경쓰여 죽겠다고? 배부른 소리들 하고 있네. (벌떡 일어선다) 에이, 오나가나. 나 나가.

명희 : 식사 안하구요?

남편 : 아 지금 밥 먹게 생겼어?

명희 : (남편 자리에 앉으며) 아니, 누가 뭐랬다고 신경질이야. 돈번다고 유세는...... 아니, 뭔가 좀 이상해. 혹시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조과장님 출근하셨겠지? 사모님한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다.

(명희 전화 건다)

명희 : 여보세요? (당황하며) 어머, 조과장님. 아직 출근 안하셨네요. 전 출근하신 줄 알고 걸었는데, 일찍 죄송해요. 네? 사표쓰셨다구요? 저...... 우리 가람아빠는 괜찮을까요? 50%나 임원을 감축한다구요?...... 네, 네. 안녕히계세요.

(명희 안절부절하며 왔다갔다한다)

벨소리

(문쪽으로 뛰어가며)

명희 : 누구세요?

영은엄마 : 나야, 영은엄마.

명희 : (문 열어주며) 어서 와.

주리엄마 : 안녕하세요? 나두 커피 마시러 왔어요.

(두 여자 들어온다)

명희 : 주리엄마가 어쩐 일로 이렇게 한가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느라 바쁘더니.

(명희, 주방으로 나간다)

주리엄마 : (몸을꼬며) IMF라 골프도 못치고 수영강습도 그만뒀거든요.

영은엄마 : IMF가 무섭긴 무섭나보다. 잘나가던 주리네가 저렇게 엄살을 떠는 거 보면.

주리엄마 : 엄살이라도 남은 속상해 죽겠는데..... (기지개 켜며) 수영을 며칠 못했더니 몸이 찌뿌듯하네.

명희 : (커피쟁반 가져오며) 그래도 주리아빤 끄떡없잖아. 대기업 이산데......

주리엄마 : 글쎄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아니, 짜르려면 말단사원부터 짤라야지, 어째서 간부는 짜르냔 말이예요. 내가 우리 아빠 승진 시키느라고 얼마나 로비를 했는데....

영은엄마 : 주리네는 그래도 시아버지가 건물이 몇 개라면서. 설마하니 아들 그냥 두고 보시겠어?

주리엄마 : 그건 그렇지만요. 호호, 요새 아침 저녁으로 시댁에 문안인사 드리잖아요. 미리 점수 따 놓을려구요.

명희 : 하여간 주리엄마.

주리엄마 : 아니, 이거 무슨 커피야? 인스탄트잖아? 난 헤이즐넛이 좋은데.

영은엄마 : 배부른 소리 한다. 인스탄트고 헤이즐넛이고 이제 너무 비싸서 못 마시겠어. 웬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뛴대?


명희 : 값도 값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주부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수입품같은 건 쓰지 말고.

주리엄마 : (비웃으며) 어머, 가람이 엄마, 애국자시네요. 물건이 좋아봐요. 왜 외제를 쓰나. 써보면 확실히 다른 걸 안써요? 아유, 커피 집에서 마셔야겠네. 안녕히계세요.


(주리엄마 나간다)

영은엄마 : 아유, 저놈의 여편네는 남 속 뒤집어 놓는데 뭐있어. 자기네가 잘살면 얼마나 잘산다고, 있는 척은. 우리 영은이 유치원을 다른 데로 보내든지 해야지, 아침마다 꼴보기 싫어 죽겠어. 오늘도 혼자 오려는데 부득부득 따라오지 뭐야.

명희 : 놔둬. 제멋에 살게. 영은아빠는 월급쟁이가 아니라서 얼마나 좋아. 해고 당할 걱정 없구......

영은엄마 : 아유, 그런 소리 마. 매상이 반으로 줄어서 당장 가게세 걱정하게 생긴 판에. (걱정스런 표정) 왜, 가람아빠네 회사에 무슨 일 있어?

명희 : 아직은 별일 없는데 지구언을 50%나 감축한대. 애 아빠 기분도 심상치않고...... 회사  그만 두면 어떻게 살아? 주리네처럼 재력있는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영은엄마 : 가람아빠처런 성실하신 분이야 뭇느 일이 있겠어? 너무 걱정 말아... 

명희 : 나도 이렇게 가만 잇어서는 안되겠어. 일자리를 알아봐야지.


경음악, 암전



2장 


(텅빈 무대. 남편, 술에 취해 흐트러진 매무새로 비틀거린다.)

남편 : 그래, 좋아. 내가 그만둔다, 이거야. 나, 그동안 뼈가 빠져라 회사에 충성한 죄 밖에 없는 놈이지만 내가 그만 둔다. 이거라구. 더 이상 눈치없는 놈처럼 뭉개고 있는 것도 치사해서 못해먹겠다. 에퉤! 이 더런 놈에 세상.

그런데......(무릎 꺾으며)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지?...... 우리 가람이, 학원도 그만 뒀는데...... 아파트 부금도 끝나려면 아직 멀엇는데...... 늙으신 부모님 효도 여행 한번 제대로 못 보내드렸는데......(엎드려 흐느낀다)


암전



3장 기계부품 조립공장


조명, 공장기계소리


강영자 : 조명희씨, 처음 봤을 때는 이런 데서 일할 사람 같지않더구만 생각보다 일 잘하네, 그랴.

명희 : 아줌마도, 어디 일할 사람, 일 안 할 사람이 따로 있나요? 사람은 다 똑같지.

강영자 : 댁에 신랑도 혹시 (목 치는 시늉 하며) 짤렸수?

명희 : (웃으며) 네에. 짤렸어요.

강영자 : 그렇구먼. 하긴 이년에 팔자는 짤릴 서방도 없지만 서도......

명희 : 아저씨가 안 계세요? 어쩌다...... 힘드시겠어요.

강영자 : 살았을 때는 술만 쳐먹으면 사람을 뚜딜겨 패서, 귀신은 뭐하나, 저런 인간 안 잡아먹구 했는디, 막상 귀신헌티 잡아먹히고 나니께, 그게 아니데. (힘차고 명랑하게) 명희씨도 그래도 있는게 나니께, 있을 때 잘 gi.

명희 : 호호호, 네, 잘 알겠습니다.


(정리해고자 명단이라 씌어진 피켓 등장)

명희 : 어머, 저게 뭐야? (까치발) 우리도 감원하나봐요. 정리해고자 명단이예요. 김숙자, 정말순, 이영자, 박옥순......

강영자 : 아니, 이것들이 시방 여자들만 짤른건가비네.

명희 : (좋아라 뛰며) 아줌마, 우리 이름은 없어요. 아줌마랑 저랑은 안 짤렸어요.

강영자 : 시방 뭐 소리 하는겨? 우릴 안 짤렀다구 가만 있자는 소리여? 배운 사람이 어째 그렇댜? 난 무식한 촌년이지만 옳고 그른 건 아는 사람이여.

아,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노조 사무실로 가야쓰겄어.

명희: (부끄러운 표정으로) 아줌마......

강영자 : 알아들었으면 위를 따르디라고. 그동안 몸도 근질근질했는디 어디 한번 뭉쳐봐?

명희 : 아줌마, 용감하시다. 앞장 서세요. 제가 팍팍 밀어드릴게요.


암전

 


4장. 명희네 주방

(남편, 앞치마 두르고 고무장갑 끼고 바쁘게 일한다)

남편 : (허리 두드리며) 아이구, 허리야. 이거 집안 일이 장난이 아니네. 난 그동안 주부들이 집에서 판판이 노는 줄만 알았는데. 가만잇자..... 청소도 끝났고.

(시계 보고 깜짝 놀람) 아니, 이 사람은 지금이 몇 신데 아직 안 오는 거야? 삐삐 쳐도 전화도 안 하고. 저녁을 먹고 올 거면 그렇게 한다고 전화 한 통 해주면 좀 좋아? 돈 좀 번다고 유세야, 뭐야? 이놈에 여편네 들어오기만 해봐라.


(벨소리)

남편 : (표정 바꾸어 상냥하게) 당신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명희 : 여보, 늦어서 미안해요. 회식자리에서 빠질 수가 있어야죠. 어머? 집안이 환하네? 자기 청소했나봐? 

남편 : (토라져서) 청소만 한 줄 알아? 찌개 맛있게 끓여놓고 당신 얼마나 기다렸는데. 둘째 손가락은 치질에 걸렸어? 삐삐쳐도 왜 전화 안해?

명희 : 미안, 미안. 밧데리가 다 됐나봐요...... 근데 여보, 이거 평소에 자기가 늘 하던 말 아니야?

남편 : (멋적어하며) 이, 이 사람은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남편 머리 긁적이며 멋쩍게 웃고, 명희 진지해진다)

명희 : 여보, 나 밖에 나가보니까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알겠어요. 그동안 바가지 긁은 거 정말 미안해요.


남편 : (멋적어하며) 어, 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집에서 살림해보니까 주부들 심정 이해하겠더라구. 나 다시 취직하더라고 집안일 나눠서 하기로 해. 여보, 고마워. 당신이 취직 안 했으면 우리 지금 어떻게 살까 눈앞이 캄캄해. (다가가) 여보, 사랑해.

명희 : 여보, IMF 때문에 우리집도 구조 조정이 됐네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