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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대회 공연극본 7.투표용지는 상품권이 아냐! (제13회 한국여성대회, 1997) 본문
한국여성대회 공연극본 7.투표용지는 상품권이 아냐! (제13회 한국여성대회, 1997)
여성연합 2011. 2. 20. 01:52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공연 극본
7. ‘투표용지는 상품권이 아냐!’ (제13회 한국여성대회, 1997)
‘투표용지는 상품권이 아냐!’
극본 | 이혜란
출연 | 여성예술집단 ‘오름’
동네 골목길에서 선거 자원봉사를 나온 아줌마들이 쭈뼛대며 서있다. 영순엄마가 먼저 나와서 다른 사람들을 부른다. 영순엄마는 통장이다.
영순 : 자, 자 어서들 와요. 왜들 그러고 서있어? 정화엄마 빨리 와. 얼른 시작하자구. 여기 사람들도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데 여기부터 쓸기 시작하자구.
정화 : 알았어요. 태현엄마 얼른 와. 아 뭘 그렇게 망설여. 동네청소 좀 하자는데.
태현 : 글쎄 청소하는 거야 좋지만 평소에 안하던 짓을 돈받고 하려니까 왠지 남들이 욕하는거 같고 영 그러네요.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요...
영순 : 눈치는 웬 눈치. 걱정하지 말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실속없는 남들 눈치보지 말고 실속있는 내 눈빛을 보라구.
마주치는 눈빛 속에 오가는 믿음!
정화 : 마주치는 빗자루에 오가는 일당!
태현 : 에라 모르겠다. 오가는 일당 속에 살찌는 가계부!
음악1. 짝사랑, 전주 4소절 들어간다 - 노래. 김애영
노래와 춤.
1.절.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이제 알아 난 정말 알아 가슴만 두근두근
아 자원봉사대
선거때만 되면 동네를 쓸고 선거때만 되면 어느샌가 뭉쳐요
우린 봉사대 앗싸 봉사대 주부 자원봉사대
대통령 선거는 신나는 껀수 일당 10만원
2.절.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이제 알아 난 정말 알아 가슴만 두근두근
아 자원봉사대
선거때만 되면 양심을 팔고 선거때만 되면 어느샌가 줄서요
동원 봉사대 앗싸 봉사대 바람잡이 봉사대
대통령 선거는 신나는 건수 일당 10만원
영순 : 싹 싹
정화 : 쓸어 쓸어
태현 : 쓸까 말까 쓸까 말까
정화 : 쓸어 쓸어
영순 : 싹 싹
정화 : 쓸어 쓸어
태현 : 쓸까 말까 쓸까 말까
정화 : 쓸어 쓸어
정화 : 근데 아줌마, 아, 아니 통장님. 오늘 일당은 어떻게 좀 두둑히 받아오셨어요?
영순 : 에헤이. 조용히 좀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구 그래. 나만 믿으라니까 그러네.
태현 : 아줌마 저 아무래도...... 저. 이러다가 걸리면 사전선거운동인가 뭔가로 잡혀간다고 그러던데
정화 : 잡혀가? 아니, 봉사하는 것도 죄가 되나?
상은 못줄망정 잡아가? 누가 잡아가? 우리 통장님이 이렇게 탁 버티고 서있는데.
안 그래요? 통장님?
영순 : 그럼 그럼. 내가 누구야 다 뒤를 봐주는 분이 계시니까 걱정말고 얼른 쓸기나 해. 자자, 쓸자구.
음악2. 청소를 빠른 동작으로 보여준다. 이때 효과음(띠기띠기띠기)이 들어간다. 자리를 옮겨 제자리에 설 때까지. 짠!으로 끝낸다.
조명 - 이 때 싸이키 조명
정화 : 아이, 그런데 형님. 너무 열심히 청소를 했더니 요기서 자꾸 신호가 오네요.
영순 : 에이그. 알았어.
점심은 대강 하구
얼른 본동으로 가서 오후 봉사를 해야지.
태현 : 본동이요? 거긴 우리동네인데
영순 : 그래. 거기 본동 시장골목있지? 거기서 딱 지키고 있다가. 아줌마들이 시장갈 시간에 싹싹 쓸어버리자구.
태현 : 싹 싹 이요.
영순 : 그래 싹 싹
정화 : 그러면 저녁은 어디서 먹죠?
영순 : 저녁은 내 일등회관에서 갈비에 맥주를 곁들여서 내 한턱낼게.
정화 : 이야, 신난다.
태현 : 저는요, 갈비보다 먼지를 뒤집어 썼더니 온 몸이 께름칙하네요.
정화 : 자기도 그래? 나도 그런데. 왠지 사우나가 하고 싶고 그렇지?
영순 :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갈비 먹고, 사우나 하고, 노래방까지 풀코스로 모실게. ok?
정화 : ok! 그것봐. 우리 통장님이 얼마나 화끈해?
영순 : 참 그리고 내 한 가지 더 일러둘거는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제일이거든.
태현 : 머니요?
영순 : 아 아니 내 정신 좀봐
뭐니뭐니 해도 인사를 잘해야돼. 지금부터 잘보여놔야 나중에 자원봉사자 원서든 입당원서든 받기가 쉽거든
태현 : 어머나 우리가 원서도 받아요?
영순 : 그래. 이번부터 원서대가 대폭 올라서 한 장당 5만원이래.
태현 : 한 장에 5만원이요?
정화 : 그럼 10장이면 50만원? 100자이면 500만원? 어머 괜찮다. 그지? 그지?
태현 : 저... 아무래도 저는 안되겠어요. 돈도 좋지만,. 태현아빠가 이 사실을 알면 난리를 칠게 뻔한데.
정화 : 글쎄 못하겠다는 소리말고 더도말고 한 20장만 받아. 100만원이면 어디야. 요새같이 일자리도 귀한 판에
태현 : 그건 그렇지만.. 자존심 강한 태현아빠가 내가 바깥에서 이런거 하고 다니는 거 알앗다가는 저를 가만 안 둘 거예요..
정화 : 가만 안두면, 잡아먹오? 에이그 이 바보야. 그 나이에 아직도 남편 눈치보고 살아? 아니, ‘고개숙인 아버지’라는 말도 못들어봤어?
영순 : 그럼, 그럼. 요새 세상에 고개숙인 남자 눈치보고 사는 여자가 어디있어? 때가 어느 때라고.
정화 : 때가 어느 때긴요. 여성이 해방되는 때죠. 10시만 되봐요! 집에있는 주부가 어디있어요. 그것만 봐도 분명히 여성이 해방된 세상이라구요.
대현 : 집에서 나오기만 하면 다 해방인가요 뭐.
정화 : 물론 나온다고 다 해방은 아니겠지.
하지만 허구헌날 집에서 남편 뒷바라지, 애들 뒷바라지만 하고 살아봤자. 여자한테 남는건 얼굴에 주름살하고 앞뒤로 찌는 군살밖에 없다구.
영순 : 그건 정화엄마말이 백번 맞아. 더구나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보통 중요한 일인줄 알아?
이게 다 정치하는 거나 다를게 하나도 없는 거라구. 아, 막상 남자들이야 직장가서 돈 버느라고 정신이 없을텐데 정치같이 골치아픈 일까지 어떻게 신경쓰겠어. 그렇게 골치아픈 일은 우리 여자들이 다 알아서 해야하는 거야.
정화 : 어머, 맞아요. 그러고보니까 내가 지금 하는 일도 바로 정치로군요. 호호호호
영순 : 그럼. 그럼 정치치. 호호호호
태현 : 정치 별거 아니네요.
영순 : 그럼 그럼 정치 별거아니지. 호호호호
이때 슬기 나온다.
슬기 : 아이고, 이게 누구셔? 왠 여자들 웃음소리가 시끌벅적하다 했더니만.
아니, 태현엄마. 빗자루들고 거기서 뭐하는 거야?
태현 : 아이고 형님 안녕하세요. 저기요...... 선거자원봉사 하는건데요.
영순 : 아유. 안녕하세요. 슬기엄마. 오랜만이예요. 동네 청소 좀 하려구. 이렇게 나왔어요.
슬기 : 그러세요? 2년 전에 국회의원 선거 때도 그렇게 빗자루들 들고 몰려다니시더니 올해도 무슨 선거가 있나보죠?
정화 : 어머나 알고 계시네요. 잘 부탁해요.
슬기 : 뭘 잘 부탁해요?
정화 : 어머, 아줌마 왜 그러세요? 썰렁하게.
슬기 : 태현엄마, 나 좀 잠깐 봐.
태현 : 아 네. 저기 잠깐만요 (빗자루 놓고 가려는데)
영순 : 지금은 좀 바쁘니까 우린 고만 갑시다.
슬기 : 통장 아줌마. 뭣땜에 그렇게 바쁜지 몰라도 통장일 잘하셔야 할텐데요.
먼저번 통장이 적십자회비 떼먹었다가 발각나서 톡톡히 망신당하고 쫓겨났다는 거 알고 계시죠?
영순 : 뭐, 뭐요?
슬기 : 흥, 여편네들이 말이야. 선거철만 되면 여기저기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고 다니고 말야. 문제야 문제.
정화 : 아니, 이 아줌마가 왜 이래?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아니 아줌마, 말이면 단줄 알아요? 별꼴이 반쪽이야 정말!
슬기 : 왜 내가 틀린말 했어? 동네사람들 모아서 한번 물어볼까? 동네 사람들!
영순 : 아 아이참. 왜 이러셔. 슬기엄마.
한동네 살면서 좋은 게 좋은거지. 자원봉사 하자는 건데. 다 좋은 일 하는 거 아니유.
삐딱하게만 보지 말고 이따 저녁에 일등회관으로 몇분 같이 나오셔. 내가 단단히 한턱 낼게.
슬기 : 통장 아줌마가 한턱을 내시겠다구요? 무슨 돈으로요.
흥, 그러니까 갈비에 죄다 넘어간거구만.
정화 : 어머머 어머머, 넘어가긴 누가 넘어가요, 이 아줌마가 아까부터 정말 웃낀다.
슬기 : 웃겨? 내가 모를 줄 알아? 당신네들 이러는거 사전 선거운동이야.
사전 선거운동이 불법이라는 거 몰라?
정화 : 부, 불법이요?
영순 : 불법같은 소리하네. 우리가 불법이면 이 나라가 통째로 불법이다.
법 좋아하시구 자빠졌네. 그러는 너는 법 지켜서 그 모양 그꼴로 사냐?
슬기 : 뭐, 뭐야.
영순 : 다 안다. 다 알어. 허구헌날 서방한테 맞고살다 채인 주제에.
그렇게 뻣뻣하게 구니 어느놈이 같이 살것냐?
슬기 : (머리채 잡으려 하며) 야, 이년아.
두사람 악쓰며 싸우고 정화, 태현 뜯어말린다.
정화가 영순을 잡아끌고 퇴장하면 슬기엄마 땅에 주저앉아 운다.
슬기 : 아이고 기가막혀. 엉엉
태현 : 아줌마, 고만 우세요. 사람들 쳐다봐. 빨리 집으로 들어가세요. 네?
슬기 : 태현엄마도 봤지? 남편없이 혼자사는 것도 서러운데 같은 여자끼리 (일어서서 털고 자리를 옮겨서) 이럴 수가 있는거야? 아이고 분해, 야 이년아!
태현 : 아줌마, 글쎄 고만하시라니까요, 네?
슬기 : 내가 틀린말 했어 어디? 통장이면 다야?
(울음을 그치며) 근데 태현엄마도 선거운동해?
태현 : 아 아니요. 그냥 옆집사는 아줌마가 좋은 일이 있다길래 반찬값이나 보태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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