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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한국여성대회 공연극본 5.그래,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제11회 한국여성대회, 1995) 본문

역대 한국여성대회(제1-36회)/제11회~20회 한국여성대회

한국여성대회 공연극본 5.그래,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제11회 한국여성대회, 1995)

여성연합 2011. 2. 20. 01:49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공연된 극 프로그램 대본

5. ‘그래,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제11회 한국여성대회, 1995)


‘그래,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대본 | 전혜성

연출 | 이혜경

출연 | 박혜숙, 김진희



<등장인물>


윤혜린 : <모래시계>의 주인공. 38세

김진숙 : 윤혜린의 대학동창.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혜린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로, 제적된 뒤 인천달동네로 들어가 지금껏 꾸준히 지역운동을 해왔다. 91년 지자제선거 때, 지역주부들의 지지에 힘입어 지역구의원으로 출마했으나, 관권, 타락선거 와중에 낙선. 이에 굴하지 않고 95년 6월 선거에 재도전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로서 참된 여성정치시대의 선봉에 서려 한다. 의지가 굳세고 강하지만, 유연하며 유머감각도 있다. 88년 최석주와 결혼, 슬하에 현명, 진실 두 자녀를 두었다.

백대희 : 윤혜린의 새 보디가드. 뚱뚱하며 멍청하고 우스꽝스럽다. 나이는 2,30대면 되고, 검은정장이 포인트.



<모래시계>의 테마음악 ‘학’이 우우우우우~ 깔리면서 무대 왼쪽에 스포트라이트, 혜린, 흔들의자에 앉아 시름에 잠겨 있다. 태수의 죽음 이후, 수년의 세월이 흘러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5년 2월 어느날. 혜린은 여전히 카지노사업에 몰두하고 있고, 나름대로는 정치권력과의 검은 제휴를 거부하면서, 이따금 고아원, 양로원 등지에 복지기금을 기탁하며 한가닥 남은 양심을 위안받곤 한다. 그러나 태수의 잔영을 지울 수 없어, 혼자있는 때면 길고 어두운 상념의 늪에 빠져든다.

전체조명으로 바뀌면서, 시름에 잠긴 혜린의 등 뒤로 검은 양복을 말쑥이 차려입은 뚱뚱한 보디가드 백대희가 등장하여 그녀의 어깨에 숄을 걸쳐준다.


대희 : (숄을 걸쳐주며) 손님이 오셨습니다.

혜린 :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오만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누구냐고 묻는 듯) ...?

대희 : 옛친구분이라고 하십니다.

(진숙이 조명권으로 들어선다)

진숙 : (반가움에 겨워) 혜린아!

혜린 : (흔들의자에 앉은 채 표정으로만 반갑고 놀라움을 표현한다.)

진숙 : (한발 더 다가서서 반가움을 완연히 드러내며) 혜린아!

혜린 : (일어나서, 우아하게) 이게 얼마만이니...(악수를 청한다)

진숙 : 얼마만이니, 진짜! 어? 여전히 이쁘네! (혜린의 얼굴을 만지며)  그래도 눈밑에 주름살은 좀 졌다, 얘, 호호호...

혜린 : (약간 불펴한 표정을 짓는다) ...

대희 : (혜린에게 정중하게 다가가) 차라도 내올까요?

혜린 : (고고하게 눈을 치뜨며 고개를 끄덕한다)

진숙 : (몸을 움직이며 방안 여기저기를 훑어본다)

대희 : (진숙에게 가서) 무슨 차로 하시겠습니까?

진숙 : (아랑곳않고 흥얼거리듯) 아무거나 주세요.

(대희, 혜린에게 절을 하고 퇴장한다)

진숙 : (퇴장하는 대희를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며) 누구니?

혜린 : 새로 온 보디가드야.

진숙 : (웃음) 참, 나 그 드라마 봤다! 모래시계, 혜린이 니 얘기더라? (약간 틈을 두고) 너, 아직 결혼 안했지?

혜린 : (진숙의 놀림을 일출하며, 의식적으로 상냥한 표정을 짓는다) 넌 그동안 어떻게 살았니? 못본 지 십년이 넘었는데.

(진숙, 무대 중앙의 소파로 걸어간다. 대사 도중 적당한 시점에 앉도록)

진숙 : (명랑하게) 달동네에서 12년째 지역운동 하고 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들 딸도 낳고.

혜린 : (무대 앞쪽으로 몇발짝 옮겨, 실내용 골프채를 집어들며) 석주형이랑 결혼했단 얘긴 들었어. (휙하고 힘차게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작)

진숙 : 동네 아줌마들하고 공장도 같이 다니면서 한솥밥 먹었지. 공부방, 탁아방도 만들구, 그러다보니 쬐금 컸다! (웃으며) 4년 전 지역구의원으로 출마까지 했잖아, 떨어졌지만!

혜린 : (놀라워하면서, 스윙하던 동작을 멈춘다) 그랬니?

진숙 : (고개를 저으며) 첨엔 하도 인기가 좋아 되는 줄만 알았어. 한데, 말이 풀뿌리 민주주의지 완전히 중앙정치 복사판였어. 관권, 금권, 타락선거!

혜린 :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익숙하게 스윙한다)

진숙 : 살림 살 일꾼 뽑는데, 돈이 얼마 있냐, 나이가 몇이냐, 남자냐 여자냐 그런 걸 따지는 거야.

혜린 : (동작을 멈추며, 진숙을 응시한다) 보나마나겠지 뭐.

(대희가 찻잔 둘이 놓인 쟁반을 손에 받치고 등장, 소파 앞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는다. 공손하게 서빙한다.)

대희 : (혜린에게) 차가 준비됐습니다.

혜린 : 됐어. 나가봐.

대희 : 첨보는 분이 와 계시는데...

진숙 : 이봐요, 보디가드씨! 난 혜린이 죽마고우예요!

대희 : (더듬으며) 어, 어제의 동, 동지가, 오늘의, 원, 원수...

혜린 : (야단치듯)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저리 가 있어!

(대희, 두말없이 무대 왼쪽 뒤편으로 가서 경비병처럼 버티고 선다. 우스꽝스런 느낌이다.)

진숙 : 앉아봐, 혜린아. (혜린이 소파에 앉는다) 살기 바빠 그동안 연락도 못했지만, 항상 궁금했어.

혜린 : (찻잔을 들며) 그런데 연속극 보니까 갑자기 보고 싶디?

진숙 : (눈을 흘기며) 기집애~

혜린 : (다정하게 진숙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농담이야. 이렇게라도 만나니 너무 반갑다. (진숙과 눈을 맞추며) 살아있다는 게 좋은 거구나...

진숙 : 연속극 보면서 후회 많이 했어. 그때 나라도 좀 친구노릇 했으면, 어땠을까... 지리산에러 태수씨 뼈뿌리는 장면에선 정말 눈물 나더라, 얘. (탁자 위에 놓인 액자를 집어들며) 이 사람, 태수씨?

혜린 :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제도 강우석 검사하고 지리산 다녀왔다!...

사는게 뭔지... 사람 사는 모양이, 참 다르지?

진숙 : (약간 정색을 하며) 그렇지만, 옳은 길이란 있어.

혜린 : (튕기듯이) 훈계하니?

진숙 : 나, 올 6월 선거에 또 출마해.

혜린 : ...

진숙 : 이번엔 정말 여성유권자 의식 각성시켜 지역살림 주인은 바로 여성이라는 걸 일깨우겠어. 그래서, 사실... 너한테 부탁이 있어 온 거야.

혜린 : (긴장되는 표정을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나, 윗분들한테 찍혀서 요새 좀 어려워. 작년에 또 세무사찰 받았다!

진숙 : 니 힘이 필요해, 혜린아.

혜린 : 나, 섣부른 짓 못해. 이사들 눈치도 봐야 하구,

진숙 : 들어보지도 않고 발뺌부터 하니?

혜린 : 아무튼. (시선 피하며) 그런 거 있잖아, 그냥 이대로 살래, 나. 이래뵈도 나, 나름대론 떳떳하게 살아~ 나도, 할 말 있어.... 아무튼, 나 이래뵈도 양심파는 짓은 안했어.

진숙 : 알아. 니가 소년소녀 가장도 돕구, 무의탁노인 위해 돈도 내놓는 거. 하지만, 그거 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 아니니?

혜린 : (발끈하려는 걸 억누르며) 너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니!

진숙 : 내 얘긴, 너의 능력과 열정을 진짜 값어치있는 일에 쏟아야 한단 말이야.

혜린 : (더욱 비위가 상해) 값어치있는 일? (진숙을 똑바로 보며) 얼마가 필요하니?

진숙 : (화가 나서) 혜린아! 내가 지금 정치자금 없어서 너한테 구걸하러 왔다고 생각하니? 너 그렇게 돈 많니?

대희 : (잽싸게 혜린 곁에 온다)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혜린 : (대희를 쏘아보며) 저리 가. (물러가는 대희의 뒷통수를 향해) 그리고 앞으로 내가 부르기 전엔 꼬박꼬박 나서지 좀 마. 알았어?

진숙 : 그래, 이왕 엎질러진 김에 할말 좀 하고 가자. 그 모래시계 보니까 니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눈에 알겠더라!

혜린 : (도도하게) ...

진숙 : 미안한 얘기지만, 그거 한편의 황당한 무협지에 불과했어.

혜린 : 그러면서 끝까지 잘도 봤구나!

진숙 : 너, 거기서 힘있는 자들 어디까지 더러워지는지 알고 싶어 끝까지 가본다 했지? 그래서 아버지 재산 당당히 세습하고, 힘있는 자들 권모술수 고스란히 본뜨고 그랬니? 이렇게 희망없는 시대에, 힘 아니면 안된다는 사이비 철학으로 무장하고?

혜린 : (황망해서) 재희, 아니 대희! 백대희!

(대희. 허둥지둥 달려오다가, 중심을 못잡고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진숙 : (혜린의 손을 잡아채며)니가 그렇게 무력하게 굴복한 그 힘이란 게 뭔데? 우리를 넘어뜨리고 죽이고, 다친 데 또 피 흘리게 하는, 썩어빠진 그런 힘 아니고 뭐야. 제발, 시궁창에 빠졌거든 양심의 탈이나 쓰지 말아.

(대희, 간신히 일어나 아픈듯이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다.)

혜린 : (소리지른다) 그만해! (격앙되는 것을 억누르며) 니가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변명 안해. 그래, 이 윤혜린, 썩어문드러진 시궁창의 얼굴마담이다...(침을 삼키며) 이만 돌아가줘.

대희 : (절뚝거리며 혜린에게 다가가) 부르셨습니까?

혜린 : (찌푸리며 황당하다는 듯이) 어제 불렀는데, 이제 왔어?

대희 : 알았습니다. (돌아나가다 다시 혜린에게 돌아와) 저, 잠깐 얘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혜린 : (귀찮아하며) 뭔데?

대희 : (엉덩이를 두 손으로 감추는 동작) 바지가 튿어졌습니다. 실하구 바늘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혜린 : 왜 이래 도대체?

대희 : (멍청하게) 제정신이 아닙니다. 배가 고파서.

혜린 : 냉장고 맨위칸에 찬밥 있어!

대희 : 고맙습니다. (우스꽝스럽게 엉덩이를 감추며 퇴장한다)

진숙 : (차를 한모금 마시고) 내가 찾아온 이유를 말할게. 우리 지역구에 집권당 등에 없고 출마하는 사람 있어.

혜린 : ...

진숙 : 가라오께에, 부근 몇몇 호텔에 오락장 지분 갖고 있는 어깨 출신이야 너도 알 거야.

혜린 : (몸이 떨린다)...

진숙 : 혜린이 니 사람이더라.

혜린 : ...

진숙 : 그 사람, 벌써 나에 대한 흑색선전에, 온갖 경조사 쫓아다니면서 돈으로 선심쓰고, 황당한 전시공약 남발하고 있어.

혜린 : (새초롬하게) 금시초문이야.

진숙 : 흑색선전이라도 막아줘.

혜린 : ...

진숙 : 대답해주면 돌아갈게.

혜린 : (진숙을 당돌하게 쳐다보며) 장담 못하겠는데?

진숙 : (실망, 분노) 왜 못해? 너, 위로 권력에 아부 안한다면서 왜 밑으론 구데기 키우니? 안보이는 데선 구린내 풍풍 풍기면서, 보이는 데만 향수 뿌리면 된다 이거지? 양심이 무슨 맛소금이니?

혜린 : (진숙의 빰을 치려고 손을 든다)...

진숙 : (혜린의 손을 나꿔채며) 내 얘기 아직 안끝났어. (연민과 안타까움이 서린 친구의 표정으로) 혜린아, 제발 정신 좀 차려.


(여기서, 역할바꾸기가 일어난다)

혜린 : 아이구, 안해, 안해. 이거 원 계속 나만 욕 먹잖아.

진숙 : 야, 연극하다 말구 갑자기 미쳣니. 왠 깽판이야?

혜린 : 이거 완전히 악역이잖아. 야, 바꿔, 바꿔. 이제 내가 진숙이 할게 니가 혜린이 해.

진숙 : 누구 맘대로?

혜린 : 대본에 그렇게 써 있잖아?

진숙 : 니가 언제 대본따라 연기했니?

혜린 : 안 바꿔주면 집에 갈 거야.

진숙 : 알았어, 알았어. 바꿔줄게. 그럼 바꾸긴 바꾸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관객 여러분한테 노래라도 한 곡 불러드리고 은근슬쩍 넘어가자.

혜린 : 그거 좋다. 무슨 노래로 하지? 옳거니, 시방 극중에서 혜린이하고 진숙이가 옥신각신 싸우고있잖아. 그러지 말고, 좋은 세상 만드는 데 하나되고 서로 사랑하라는 뜻에서, 우리 학교 때 혜린이하고 진숙이가 즐겨부르던 ‘햇살’ 한번 듀엣으로 부르자.

진숙 : 옳으신 말씀.

혜린 : 거기, ‘햇살’반주 좀 넣어줘요.

(반주에 맞춰, 혜린, 진숙, 서로 화답하며 정겹고 감격적으로 ‘햇살;을 열창한다)

(역할바꾸기) (두 사람, 겉옷을 바꿔입는다)


혜린 : 자, 그럼 지금부터 내가 혜린인데, 나도 폼 한번 잡아보고 시작해야지. 저기, 문성희씨! 음악 좀 부탁해요. (혜린스런 폼을 잡는다)

(음악, 우우우우우~ 가 짧게 깔린다)

혜린 : 아니, 아니. 그거 말고. 그건 아까 틀었잖아. 이번엔 나나나나나~, 그 혜린의 테마를 틀어야지!

(혜린의 테마, 나나나나나~가 깔리면서, 잠시 혜린이 폼잡는 연기)

(대희가 숄을 가지고 허둥지둥 등장한다. 처음엔 아까의 혜린에게 숄을 덮어주려가 밀침을 당하고, 당황하여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살피다가 알았다는 듯 새 혜린에게 숄을 덮어준다. 새 혜린은 일 없다는 듯 대희의 머리에 숄을 뒤집어씌운 뒤, 벙쪄 있는 대희에게 이제 필요없다는 몸짓을 보인다. 대희, 얼빠진 마임을 하다, 화가 나서 퇴장한다.)


혜린 : (회상하듯) 아, 이 노래 부르니 정말 옛날생각 난다.

진숙 : (부드럽게 누구러져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지?

혜린 : 석주형은 잘 있니?

진숙 : 마누라 잘둔 덕에 호강한다!

혜린 : 눈에 선해. 너 담배 피다가 석주형한테 따귀맞았던 거. (웃음) 세상에 그렇게 후지게 만난 사람하고 결혼까지 했어~

진숙 : 여성문제로 싸우면서, 그 사람 첨 만났지. 나 그때 진짜 초짜였어, 그치? 여성학 알면서 첨으로 운동이란 거 진지하게 생각했는데.

혜린 : 담배도 피워보구.

진숙 : 그때 화영이 언니라고, 생각나니?

혜린 : 응!

진숙 : 지난번 선거 때 관악구에서 당선됐지.

혜린 : 그 언니도 지역운동했니?

진숙 : 그럼. 지자제라는 게 뭔데? 지역 살림사는거야. 그런 의미에서 지역운동가는 적임자지. (웃음) 어쨌든, 여성의 지방의석 20% 확보가 이번 선거 목표야!

혜린 : (진지하게) 진숙아, 이건 결코 과시가 아니라, 친구로서 마지막 우정인데..., 나, 선거비용이라면 조금 도울 수 있어.

진숙 : (농담조로) 그래 줘봐라? 화영이 언니가, 준다면 받아오래더라 야.

혜린 : (서글프게) 그리고 이제 혜린인 죽은 셈 쳐.

진숙 : (안타까워 하며) 왜 이렇게 끝을 맺니, 혜린아...

혜린 : (독백처럼) 죽었어, 윤혜린인 죽었어...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혜린, 수화기를 들고 내용을 들으면서, 긴장되고 무거운 표정으로 바뀐다.)

혜린 : (전화를 받으며) 네...네...네... 하지만 그건 말도 안되죠...네...아무리...내가 지금껏 해온 게 있는데... 남의 몫이란 것 그렇게 가볍게 여기면 안되죠, 아무리 힘 가진 남자들이라고...네, 네... 어쨌든, 그건 제가 용납못해요,절대...아, 그러면 저는 사람이 없나요?...저도 힘있는 사람입니다... 글쎄,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라 하세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혜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좌불안석이다)

진숙 : (걱정스럽게) 무슨, 일인데, 그래?

혜린 : 아냐,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진숙 : 너 또 보디가드를 찾니?

혜린 : (진숙에 시선을 두며) 내가 초라해뵈니, 진숙아?

진숙 : ...

혜린 : 미안하다, 이런 꼴을 보여서.

진숙 : 괜찮아. 친군걸 뭐.

혜린 : (잠시 진숙을 응시하다가) 저 전화,... 그래 말할게. (한숨 쉰다) 나, 남자들한테 또 당했어.

진숙 : ...?

혜린 : 주주들이 완전히 등 돌렸대. 이번 총회에서 날 확실히 밀어낼 거래. 오늘 이사들끼리 담합했나봐. 작년 세무사찰이 극약이었어. (고개를 숙이며) 가진 주식까지 처분해달래...

진숙 : (진심으로 분개하며) 저런 망할 자식들.

혜린 : (자조하며) 나, 다시 힘으로 맞서볼까?

진숙 : 혜린아!

혜린 : (고개를 저으며) 아냐, 이젠 안돼. 너무 지쳤어.... 이제 뭐할까? 주식 팔아 그 돈으로 세계여행이나 할까?

진숙 : 혜린아... 아까 널 너무 몰아대서 미안해.

혜린 : (자조) 싸지 뭘.

진숙 : (망설이다가) 너, 이러지 말고, 우리 지역모임에 한번 나와봐.

혜린 : (힘없이) 내가 거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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