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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한 식당여성노동자의 이야기 - 한국여성민우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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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한 식당여성노동자의 이야기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합 2011. 3. 5. 10:48

"나는 식당에서 일해. 아이들 키우고 마흔이 넘어서 일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선택할 일이 별로 없었어. ‘가족같이 일할 분’ 그 광고를 보고 시작했지. 딱히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는데, 집에서 밥상을 차리는 일을 했으니 이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어. 내가 일하는 곳은 숯불고기 집이야.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열두시간을 일해. 쉬는 시간은 딱히 없어. 밥하기, 반찬하기, 식재료 다듬기, 설거지, 홀과 주방 청소, 서빙, 불판닦기, 많은 반찬을 나르고 허리를 숙이고 고기를 구워. 쉴새가 없지. 앉았다 일어섰다 반복하면서 무릎과 허리가 몹시 아팠어. 손님들은 쉴새없이 벨을 울려대지. “빨리 갖다줘!” “왜 안 갖다줘!” “저 아줌마 쳐다도 안 보네.” 일하는 사람은 적고 손님은 재촉해대고 큰소리로 질러대는 고함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 그래도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속으로는 나도 집에서 엄마고 아내인데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내가 일해야 우리집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참기로 해.



서빙 업무를 보는 사람은 외모를 보고 뽑는 경우가 많아. 우리는 열심히 일하려고 온 건데 함부로 대하는 손님도 있어. 고기를 구울 때 “내 무릎에 앉아 구워.” “술 한 잔 따라.” 하는 손님들도 있어. 내 일당보다 비싼 고기를 태우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해서 굽고 있는데, 옆에서 내 종아리를 주물럭대며 만지는 사람도 있어. ‘손님은 왕인데 매상 올리는 손님인데 그런 것쯤 맞춰주면 어떠냐’고 사장이 말하기도 해. 그렇지 않아도 식사 시간이 딱히 없어 배도 고프고, 나는 먹지 못하는 고기를 굽느라 힘겨운데 그런 희롱과 무시를 당하면 더 허기가 지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식당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너무 밑으로 보는 거 같아. 밥하는 일을 우습게 보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이유없이 낮춰보는 거지. 하지만 밥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잖아. 밥을 주는 일은 다른 일보다 소중한 일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밥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식당일을 하다보면 위험한 일이 많아. 주방은 좁고 음식은 펄펄 끓고 칼이며 식기구도 조심해야 해. 베이고 찔리고 데고 허리며 무릎에 골병이 들어. 어떤 이는 사람을 줄인 데서 혼자 다 일하다가 쓰러져서 산재승인을 받았더라구. 일하다 다칠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은 자기 돈으로 치료하고 아프다는 말을 못해. 사대보험이 되면 좋겠지만 적용이 안돼. 나이든 엄마들, 가장인 엄마들, 어떻게든 일해야 하는 엄마들이 식당에서 무진장 많이 일하지만 월급도 최저임금이고 보험도 안되고 쉬는 시간도 없어. 일요일이라도 제대로 쉬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한달에 두 번만 쉬어. 집에 일이 있거나 아이들 일 때문에 하루라도 더 쉬고 싶으면 대납을 하고 다른 사람을 써야 해. 어떨 때는 석 달 동안 하루도 못 쉰 때도 있어. 생리통이 심할 때는 부엌 귀퉁이에서 견디기도 해. 그러면서 생각하지. 내 몸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인데 이 일을 계속 버틸 수 있을까. 무섭지. 가족한테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지만 나는 내 미래가 무서울 때가 있어.



당장 그만두고 싶을 땐 자식들 얼굴을 생각해. 한 달만 또 한 달만 더 견디자고 하면서 십년째 일하고 있어. 월급은 해마다 똑같고 그만두어도 퇴직금도 없지. 일을 하다가 유리문 밖을 보면 시간이 밖에서 흘러가고 있어. 해가 밝아지고 차츰 어두워지고, 그 시간이 저 유리문 밖에서만 가고 있네. 밥하고 차리고 치우고 하면서 이곳에는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아. 사람들도 우리를 보지 않지. “여기요!” 부르면서 벨을 누르거나 음식을 보고 있을 뿐이야. 이게 나의 삶이야.



하지만 나 여기 일하고 있다고, 나의 노동을 보아달라고, 나를 노동자라고 불러달라고 한번쯤 꿈꾸기도 해. 그러면 이 갇힌 식당 안에도 시간이 흐르지 않을까. 구운 고기, 뿌연 연기,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에 사라진 내 목소리도 다시 낼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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