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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월8일의 ‘시크릿 가든’

여성연합 2011. 3. 24. 12:33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과 김주원은 서로 몸이 바뀜으로써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길라임의 몸에서 피멍과 상처를 보고서야 끈떨어진 가방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헤아리고, 김주원의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개념의 집이 아닌’ 호화주택에 살아봄으로써 동화 속에서 안하무인이 된 사회지도층을 수긍하게 된다. 그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아무리 학습을 하고 노력을 해도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체험만이 답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쳐준다.


남자들은 말한다. 여자들이 다 해먹는다고, 남자들이 역차별당한다고, 여성운동은 접고 남성운동이 일어나야 공평하다고. 제법 개명했다고 자부하는 남자들도 다르지 않다. 성차별의 이슈는 신문·방송에서 비호감의 메뉴가 된 지 오래다. 혹시 여성이 차별을 당했다면 개인적인 능력 부족 탓이라고 잘나가는 ‘알파걸’들을 증인으로 들이댄다. 이런 분위기에 지배당한 여자들은 ‘네 말 다 맞아’라며 고개를 떨군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머니들은 이미 여자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커리어 우먼이라 불리며 일하는 여성의 70%가 비정규직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니 커리어를 쌓고 싶어도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살림과 아이를 도맡으며 돈도 벌어야 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에게는 비정규직도 ‘아이고, 하느님’이다. 취업을 원하면서 외모에 선투자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스펙’ 결함이다. 여자의 날씬한 몸을 찬양하는 사회는 여자의 임금도 남자의 절반 이하로 가볍게 매겨준다. 유방암 발병률은 OECD 국가 중에 2위이며 그 증가율은 가파르기만 한데 ‘설마 내가’만이 유일한 자구책이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은 진작에 만들어졌지만 용산에는 여전히 붉은 등이 치열하다.

이런 현실을 몰랐다고? 이건 시크릿 가든이 아니다. 공개된 가든이다. 다만 남자들은 알 이유가 없었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 일도 아닌 것을 왜 알아야 하나?’ 여자들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쉽게 바뀔 현실이 아닌 바에는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왜? 여자가 행복하지 않은 세상은 가족에게도 나라에도 미래가 없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저 출산율을 보라. 자신의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기저귀 값 몇 푼에 생명을 책임질 셈법은 아인슈타인도 찾아내지 못할 성싶다.

3월8일, 시크릿 가든이 열린다. 뉴스에는 당연히 안 나오고 드라마에도 없는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역으로 여성들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날,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여성노동자 1만5000여명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위해 빵과 장미를 들고 행진한 것을 시작으로 113년째 이어지는 세계 여성의 날. 중국,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캄보디아, 러시아에서는 국가 공식휴일이며 밸런타인데이처럼 여성들이 축하와 감사를 받는 날. 공식휴일이 아닌 나라에서도 여성들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고 양성평등의 방향을 논의하는 행사들이 이어지는 날이다.

여성의 행복은 디자인에 있지 않다. 그건 정원 가꾸기와 같다.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는 살아있는 수고가 있어야 꽃이 핀다. 김주원은 바뀐 몸으로 제 어머니가 길라임에게 가하는 수모를 직접 당함으로써 어머니의 횡포가 가져오는 통증을 체감한다.

체험만이 객관성이라는 방어벽을 뚫어낸다. 현실에서도 제발 남자들이 여자가 되어 보는 기적이, 사회지도층 여자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수많은 이웃여성이 되어 보는 기적이 일어날 수는 없을까. http://38women.co.kr 을 클릭해 보시라.

그리하여 3월8일 여자가 되어 보는 시크릿 가든이 일어나길, 여자로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찾는 시크릿 가든을 만나길.

2011.3.8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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